🚲 “두 바퀴로 떠난 네덜란드” – 바람 따라, 풍차 따라, 진짜 여행 시작

언젠가 한 여행 책에서 이런 문장을 본 적이 있습니다.
“네덜란드를 진짜 느끼고 싶다면, 자전거를 타고 떠나라.”
그 말 한 줄이 내 마음에 오래 남았고, 결국 저는 두 바퀴에 기대어 낯선 나라를 느끼기 위해 비행기에 몸을 실었습니다.

🌬️ 바람이 인도하는 도시, 암스테르담

암스테르담 공항을 나선 순간부터 분위기가 달랐습니다. 택시보다 먼저 눈에 들어온 건 도로를 가득 메운 수천 대의 자전거. 출근길 정장을 입고 자전거를 타는 사람들, 엄마 뒤에 꼬마를 태운 자전거, 심지어 강아지를 앞바구니에 넣고 가는 사람까지… 이곳에선 자전거가 단순한 교통수단이 아닌 삶의 일부처럼 보였습니다.

그렇게 저도 한 대의 자전거를 빌려, 도심을 천천히 달리기 시작했습니다.
운하 옆을 따라 이어진 도로, 브뤼헤풍 건물과 꽃으로 가득한 창가들. 자동차 창문 너머로 스쳐 지나가는 풍경이 아니라, 바람 냄새와 햇살까지 느끼는 여행이 시작된 거였죠.

🛤️ “풍차가 돌아가는 마을까지” – 자안스헤스칸스

암스테르담에서 약 1시간 반 정도 달려 도착한 자안스헤스칸스(Zaanse Schans). 어릴 적 동화책에서 봤던 풍차 마을이 현실이 되어 눈앞에 펼쳐졌습니다.

초록 지붕의 나무 집들과 천천히 돌아가는 풍차, 강가에는 오리 떼가 유유히 떠다니고, 치즈 공방 앞에선 구수한 냄새가 풍겨왔습니다. 저는 거기서 직접 나막신을 만들어 보고, 고르곤졸라와 고다 치즈를 시식했어요.
그 순간은 ‘관광’이 아니라 ‘살아보는 것’ 같았습니다.

🎨 “예술 속을 자전거로 걷다” – 크뢸러뮐러 미술관

다음 여정은 네덜란드에서도 손꼽히는 국립공원 ‘호헤 펠루베’. 이곳의 특별한 점은 미술관까지 가는 길이 모두 숲길이라는 점인데요, 무료 대여 자전거인 화이트 바이크를 타고 숲을 달리며 크뢸러뮐러 미술관으로 향했습니다.

가는 길 내내 사슴과 토끼가 눈앞을 스치고, 멀리선 새들이 노래하고 있었습니다.
도착한 미술관은 반 고흐 작품이 대거 소장된 곳. “별이 빛나는 밤”, “감자 먹는 사람들”을 눈앞에서 보고 있는데, 숲을 지나온 여운이 그대로 예술 속에 녹아드는 듯했죠.

🌷 “튤립밭 사이를 달리다” – 꿈이 된 풍경

튤립 시즌(4~5월)에 맞춰 릴리스트라트로 향했습니다. 솔직히 말하면, 저는 사진 속 튤립밭이 포토샵일 줄 알았어요. 하지만 실제로 만난 그 풍경은, 말문이 막힐 정도로 환상적이었습니다.

수천 수만 송이의 튤립이 노랑, 빨강, 보라, 분홍으로 끝없이 이어져 있었고, 저는 그 사이를 자전거로 달렸습니다. 마치 꿈속을 헤엄치는 것처럼…
그 풍경은 절대 사진으로 담을 수 없고, 직접 ‘달려야’ 비로소 온전히 느낄 수 있었습니다.

🏰 “시간을 거슬러 올라간 하루” – 데 하르 성

중세의 숨결이 살아있는 데 하르 성(Kasteel de Haar)까지의 여정은 말 그대로 ‘시간 여행’이었습니다. 고요한 시골길, 양떼가 풀을 뜯고 있는 들판을 지나 달리다 보면, 갑자기 눈앞에 커다란 성이 모습을 드러냅니다.

그 안으로 들어서면 귀족들의 식탁, 화려한 샹들리에, 붉은 벽돌 벽들이 시간의 흔적을 이야기합니다. 성에서 자전거를 주차하고 조용히 정원을 거닐다 보니, 마치 중세 귀족이 된 듯한 기분도 들었습니다.

🧀 “먹고, 쉬고, 다시 달린다” – 네덜란드식 피크닉

자전거 여행의 묘미는, 어디든 멈출 수 있다는 점입니다. 작은 운하 옆 벤치에 앉아 스트룹와플과 치즈 샌드위치를 먹으며 보내는 피크닉 시간. 하늘을 보며 그늘에서 쉬는 그 시간이 어쩌면 여행의 가장 완벽한 순간일지도 모르겠습니다.

🔧 자전거 여행을 준비하는 분께

• OV-fiets: 기차역에서 쉽게 대여 가능한 자전거, 하루 4.5유로로 경제적입니다.

• Fietsersbond.nl: 경로 추천, 자전거 도로 상태까지 알려주는 네덜란드 자전거 길 안내 사이트.

• 헬멧은 선택, 규칙은 필수: 네덜란드는 자전거 신호, 우선순위 규칙이 엄격하니 반드시 숙지하고 출발하세요!

🌍 여행이 끝난 후에도 남은 것

네덜란드의 바람, 풀냄새, 자전거 바퀴가 도로에 닿을 때 나는 부드러운 소리까지… 모든 것이 아직도 마음속에 선명하게 남아 있습니다.
자동차로는 절대 만날 수 없는 길들, 버스 창문으로는 놓쳐버릴 작은 풍경들, 그런 것들을 ‘직접’ 달리며 느꼈다는 것이, 제게는 이번 여행의 가장 소중한 선물이었습니다.

두 바퀴 위에서 만난 네덜란드는, 아직도 제 마음속에서 천천히 굴러가고 있습니다.